최근 들어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제로 PPT’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현대카드 등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하나의 업무 혁신 운동이다. 그런데 이러한 운동이 발달장애인에게는 의외로 비효율적인 업무 혁신 운동일 가능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글로 간단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것이 편리하겠지만, 발달장애인에게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자료가 더 편리한 방법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발달장애인 관점에서는 글을 일목요연하게 쓰는 것보다 시각적으로 확실히 드러나는 프레젠테이션이 더 효과적인 이해 방식일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발달장애인 직원들에게는 어려운 말로 글을 쓰기보다 쉽게 시각적으로 드러난 이미지가 기억에 남는 방식으로, 특히 특별한 주의, 주장, 특별한 원칙이나 개념 등을 설명할 때는 말보다 글로, 글보다 시각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더 깔끔하고 더 이해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PPT 화면으로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하는 estas의 실제 사례. ⓒ장지용

필자가 참여하는 성인 자폐인 자조 모임 estas에서는 지난 2016년 비르센 바사르와의 토론회와 2018년 영국 연수단 사업, 2019년 오티즘 엑스포를 제외하고는 인쇄물을 발행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2016년과 2019년은 외부 행사를 위하여 인쇄물을 발행한 것이었다. 2018년의 영국 연수단 사업에서 내부 지침서 같은 것을 발행한 것이 실질적으로 estas가 자체 활동과 논의를 위하여 발행한 유일한 인쇄물이었다.

나머지 행사에서는 estas는 될 수 있으면 파워포인트 화면을 사용해서 안건지, 교육자료, 브리핑 문서 등을 제작하고 있다. 물론 필자가 직접 제작하는 비율이 대단히 높긴 하지만 그렇다.

이러한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첫째는 estas의 특성상 인쇄물을 발행할 자금이 부족했다는 점, 둘째는 인쇄물을 발행하게 되어 문제가 될 종이 낭비를 줄이기 위한 목적, 셋째는 자폐인의 특성상 시각적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는 점, 넷째는 대부분 시중의 ‘모임 공간’에서 열리는 일인 만큼 컴퓨터 연결이 가능했다는 점 등이었다.

실제로 estas에서 시각적인 PPT 자료를 사용했다는 이유로 불만을 제기하거나 문제로 삼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나중에 시각화된 자료를 내부 공유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온라인 Zoom을 사용한 모임을 진행하고 있어서 시각적 자료 공유가 더 편리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비대면 행사가 잦아지면서 시각적으로 정보를 제공할 방법은 더 필요해졌다. 이것을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시각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지 말라는 것도 모순인 문제다.

물론 PPT를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는 “형식적인 것에 치우치지 말고 업무의 본질에 더 관심을 가지라”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문제는 시각적인 정보 활용이 더 편리할 수 있는 발달장애인을 존중하지 않은 업무 방식이다.

기업들이 PPT를 없애는 문화가 생긴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시각적인 업무 이해와 소통의 용이성을 없애겠다는 나쁜 의도는 아니다. 파워포인트 특성상 있는 글꼴, 이미지 사용, 템플릿 등의 사용에서 지나치게 틀에 맞추다 보니 업무 부담이 더 늘어난 것을 줄이겠다는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된 점은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적어도 대외적으로 벌이는 행사나, 발달장애인 직원들을 고용하고 발달장애인들에게 설명할 때만은 PPT를 사용해서 시각적이면서 직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이해하는 것에서는 빠르다. 대외적인 행사에서는 외부인들은 회사의 문화를 구태여 보여줄 필요가 없어서일 것이고(외부인들은 겉에 보이는 이미지에 더 집중한다는 점을 생각하라!), 발달장애인들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시각적 이해가 더 빠른 집단이기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에게 더 간단하다고 시각적인 정보 전달법이 아닌 인쇄 매체 또는 줄글로 보고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발달장애인이 비발달장애인에게 보고를 한다면 적어도 이해라도 할 수 있지만(물론 발달장애인 직원이 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한 노력이 매우 많이 들겠지만), 비발달장애인이 발달장애인에게 업무 내용이나 전달사항을 시각적인 정보전달법으로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발달장애인에게 부적합한 의사소통 방식이다.

발달장애인과 업무적으로 소통하는 방법에서 시각적인 정보 제공은 대단히 중요하다. 발달장애인에게는 백 마디 설명보다 잘 적혀있는 문서 하나가 더 좋고,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시각적인 설명이 들어있는 자료일 것이다. 흔히 쉬운 정보/문서로 번역되는 이지 리드(Easy Read)가 한국에서 적용될 때 시각적 정보 사용을 병행하는 것은 그러한 것에서 출발한 것이다. (물론 영국에서 그 기법이 전해 내려온 점은 있다.)

그래서일까? 어떻게 보면 ‘제로 PPT’는 발달장애인에게는 의외로 비효율적일 수 있다. 발달장애인에게는 시각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빠른 업무 지시 전달법일 수 있다.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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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계약 만료로 한국장애인개발원을 떠난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이후 장지용 앞에 파란만장한 삶과 세상이 벌어졌다. 그 사이 대통령도 바뀔 정도였다. 직장 방랑은 기본이고, 업종마저 뛰어넘고, 그가 겪는 삶도 엄청나게 복잡하고 '파란만장'했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파란만장했던 삶을 살았던 장지용의 지금의 삶과 세상도 과연 파란만장할까?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는 픽션이지만, 장지용의 삶은 논픽션 리얼 에피소드라는 것이 차이일 뿐! 이제 그 장지용 앞에 벌어진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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