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 황인준 씨.ⓒ유튜브 캡쳐

16년전 교통사고로 사지마비장애인이 된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활동가 황인준 씨는 소변줄을 사용하며, 방광관리와 저혈압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인을 통해 중증장애인의 건강관리 서비스인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를 알게 된 황 씨는 평소 궁금점을 해소하고자 서둘러 신청했지만, 힘만 쭉 빠졌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는 중증장애인이 거주 지역 또는 이용하던 의료기관에서 만성질환 또는 장애 관련 건강상태 등을 지속적으로 관리 받는 제도로, 보건복지부가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 보장에 관한 법률(장애인건강권법)’에 따라 2018년부터 5월부터 시범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참여를 원하는 중증장애인은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를 통해 시행기관을 검색해 문의하면 된다.

황 씨 역시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를 통해 집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해당 병원에서는 따로 예약 없이 방문하면 되며, 휠체어 접근 또한 ‘계단이 몇 개 있긴 하지만 이동식 경사로가 준비되어 있어서 문제없다고 답했다.

이동식 경사로를 설치하는 모습.ⓒ황인준

황 씨는 기쁜 마음에 10여분 만에 성북구에 위치한 의원을 찾았지만, 직원은 이동식 경사로 설치에 미숙했으며, 한참이나 걸려 설치된 경사로는 병원입구 구조에 맞지 않아, 그냥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후 또 다른 장애인 건강주치의로 등록된 병원에 연락했지만, 병원에서는 ‘몸도 불편하신데, 어디가 아파서 내원하려고 하는지’ 물으며, ‘굳이 이 병원을 고집하지 말고 가까운 병원을 방문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고 거부했다. 결국 다른 자치구까지 추가 검색하고서야 궁금해 했던 방광관리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학습지원센터 강완식 소장.ⓒ유튜브 캡쳐

시각장애인인 서울시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학습지원센터 강완식 소장 또한 장애인 건강주치의 제도가 ‘그림의 떡’이라고 했다. 만성질환을 갖고 있는 그는 장애인 건강주치의로 등록된 4개의 병원에 문의했지만, 건강주치의 찾기에 실패했다.

강 소장은 “제도를 이용하고 싶다고 문의하면 첫 번째 반응은 모두 의문형이다. 본인들이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건강권법 시행령을 보면 병원에서 직접 신청서를 내고, 소정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제도 자체를 모른다고 하는 게 아이러니”라고 꼬집었다.

강 소장은 코로나19 백신접종 기간이라 분주한 병원 상황에 눈치가 보여 더 이상 문의도 못한 채 수화기를 내려놓아야했다. 강 소장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사업에 안과전문의가 없는 점, 시력 유지 및 관리가 절실한 경증 시각장애인은 이용할 수 없는 점도 아쉽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1일 최혜영TV 함께해영 유튜브에서 개최된 ‘장애인건강주치의사업 현황과 장애인당사자 사례발표회’에서 이 같이 토로했다.

장애인 건강주치의 2차 시범사업 참여자 1146명으로 전체 등록장애인 0.1% 수준에 불과하다.ⓒ최혜영의원실

보건복지부는 중증장애인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 ‘장애인건강주치의 제도’를 지난 2018년 5월부터 시범사업 중이다.

최혜영 의원실의 건강주치의사업 통계에 따르면, 2차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은 전체 중증장애인(2020년 98만4965명) 중 0.1% 수준인 1146명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567명의 등록 의사 중 실제 활동 기록이 있는 건강주치의는 단 88명에 불과하다는 점.

이 같은 저조한 성과에도 복지부는 이달부터 3차 시범사업을 앞두고 있다. 장애 관리 서비스의 대상 유형 확대(정신장애인), 만성질환 검사를 위한 바우처 제공, 교육·상담의 수가개선과 방문의료 서비스 확대가 포함됐지만, 실제 장애인들이 사업을 이용할 수 있을지 의문은 여전하다.

전국 장애인건강주치의로 등록된 89개소 점검 결과. 70%가 내원 상담을 거부하거나 사업을 중단했다. 또 43%인 38개소의 관계자가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참여 사실 조차 몰랐다.ⓒ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한자협)가 지난 4월부터 전국 장애인건강주치의로 등록된 89개소를 점검한 결과, 70%인 62개소가 내원 상담을 거부하거나 사업을 중단했다. 해당 의료기관들은 ‘이용률 저조로 인한 사업 중단’, ‘코로나19 확산방지를 위한 잠정 중단’ 등의 이유로 당사자의 방문을 거절하며 책임 없는 태도를 보였다.

또 43%인 38개소의 관계자가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참여 사실 조차 몰랐다. 서울 성북구 참여자는 ‘동네 의원 중 한 곳에 문의했지만, 간호사는 처음 듣는 얘기라면서 모른다고 했고, 등록된 주치의에 대해 문의하니 원장도 신청하지 않았다고 했다’고 토로했다.

더욱이 주치의제도 참여 의료기관 수는 총 542개소인데, 50% 가까이가 수도권에 소재했다. 수도권은 진료 거부를 당해도 다른 기관에 문의할 수 있지만, 비수도권은 서비스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현실.

경북 포항시에 거주하는 한 뇌병변장애인은 3개의 의원급 병원 중 2곳은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답변, 나머지 한곳은 엘리베이터가 없어 방문할 수 없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백인혁 활동가(가운데).ⓒ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의료기관을 찾아볼 수 있는 국민건강보험 홈페이지에도 편의시설과 접근 파악을 위한 정보가 불친절하게 제공되고 있었다.

인천지역 참여자는 ‘승강기도 설치되어 있고, 접근이 가능한 것으로 나와 있지만, 막상 가보니 경사로가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불안하고, 진료실도 매우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서 자리를 잡을 수 없었다‘고 꼬집었다.

한자협 백인혁 활동가는 “현재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은 실제 사업을 운영하지 않는 기관이 상당수며, 승강기 등 편의시설 미설치 기관이 즐비하다”면서 “의료기관의 사업 중단과 책임 부재가 당사자의 서비스 참여를 가로막고 있다. 당사자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복지부에 ▲참여 의료기관의 편의시설 설치, 방문서비스 활성화 ▲등록의료기관과 ‘건강주치의’에 대한 사업 이행 지시 및 교육 진행 ▲장애인 선택권 부여 지정절차 마련(종합병원 등 원하는 의사 선택) ▲당사자에 대한 홍보 강화 ▲홈페이지 검색 절차 개선 및 의료기관 정보 최신화 등을 요구했다.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선영 과장.ⓒ유튜브캡쳐

이 같은 지적에 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선영 과장은 장애인 건강주치의 시범사업의 저조함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며, 3차 시범사업에서는 좀 더 보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과장은 “건강주치의 사업 참여율이 저조한지 연구용역을 전행하고 논의해본 결과, 당사자분들은 이용하더라도 큰 혜택을 보는 게 없다는 불만이 있고, 의료 공급자는 어려운 서비스를 제공함에도 참여요인이 너무 적다는 것”이라면서 “참여 의료진이 없어 낙심하고 실망하는 부분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 “9월말부터 진행될 3차 시범사업은 좀 더 많은 분들이 혜택 받을 수 있도록 주장애 관리 대상, 정신적장애인 유형까지 확대하고, 공급자를 위한 수가 구조도 변경하는데 집중했다”면서 “지난달 장애인단체와 의사회를 통해 안내사업을 실시했고, 앞으로 지역별 홍보, 주치의 교육 시 장애유형별 특성과 서비스를 임하는 태도도 함께 진행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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